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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임하기 전에
​(여호수아 5:2-9)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너고 5장으로 넘어오면서 가나안 정복의 중대한 사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5장2절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하십니다. ​

왜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요구하시지 않고 강을 건너와서 적군이 눈앞에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시는지,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무모하고 어리석은 명령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므로 할례를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길 바랍니다. 

 

정체성의 재확인

할례는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의 표징입니다. 단순히 몸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몸에 세기는 것입니다. 결혼의 반지도 중요하지만 결혼의 혼인 서약에 싸인함으로 부부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가시적 증표가 할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임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인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시금 확인 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할례가 아닌 성령을 통해 죄를 고백하고 순종함으로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바로 점검해야 합니다. 나를 바로 알때 가나안 족속과 동화되지 않습니다. 

관계의 회복

4-5절의 말씀을 보면 출애굽한 1세대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지만  불순종으로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광야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들은 40년 동안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광야의 길을 걷고는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소홀졌다는 사실입니다.  바쁜 광야 생활은 우리의 정체성을 잃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던 것처럼, 우리들도 분주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세상의 스펙이나 재산을 쌓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의 봉사와 헌신보다도 먼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중요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고백

전쟁을 코앞에 두고 할례를 행하는 것은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1세대들이 모두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은 전군의 70-80%가 되기에 주력부대들이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디나의 강간 사건에서 할례를 행한 세겜족속을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가서 모두 죽이고 디나를 데리고 온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들은 이 전쟁이 자신의 힘과 칼이 아닌, 자신의 전략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무장해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무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요구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지라도 순종함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시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복의 결과

할례를 행한 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그곳을 길갈이라고 부르십니다. 애굽의 수치란 400년 노예의 삶과 광에서의 불신과 실패와 아픔의 상처들, 40년동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해하는 그들의 수치가 길갈에서 온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우리는 더이상 과거에 메여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길갈에서 하나님께서 할례를 행하기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예식이 아닌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믿음의 고백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할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문제 앞에서 먼저 "나는 누구인자"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 "나는 믿음의 고백이 있는지" 결단하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념 돌을 세우자

(여호수아 4:19-24)

기념비를 세우는 이유와 잊혀진 기념비

충주의 중앙탑과 고구려비처럼 기념비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세워진다. 그러나 고구려비가 발견 당시 이끼가 끼고 방치되어 마을 앞 기둥으로 밖에 쓰임받지 못했다. 이와같이 기념비도 관리하지 않으면 이끼가 끼고 잊혀지듯, 우리의 삶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놀아운 은혜도 바쁜 일상 속에서 무뎌지고 잊혀질 수 있다.

아무것도 없던 토론토 땅에 세계로 교회를 세우시고 인도하신 9년의 모든 과정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잊혀진 기념비를 다시 발견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기적의 현장에서 돌을 취하라

넘실거리는 요단강이라는 불가능한 현실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발을 잠글때 마른 땅을 건너는 기적을 체험한다. 기적앞에 하나님께서는 추억으로, 감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기념비'를 세워라 명령하신다. 이 돌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의 증거이며 설교이다.

우리들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그 자리에서 '기념 돌'을 취해야 한다. 그 기념돌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기적은 순종할 때 이루어진다.

가르치는 돌 - "이 돌들은 무슨 뜻입니가?"

기념 돌은 다음 세대들의 질문을 유발하며 신앙를 전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다."(21.22)는 생생한 간증이며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들어주는 시청각 자료가 된다. 

우리가 기념 돌을 볼때 우리는 지금의 문제와 앞으로의 문제 앞에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기에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얻게된다. 가나안 정복기간동안 이 기념비는 그들의 이정표이며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재공한다.

이민자의 삶은 녹록치 못하다. 처음와서는 비자문제로 재정문제, 언어문제 등 모든 것들이 문제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정착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신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은혜의 기념 돌들이 된다.  

또한 우리의 기념 돌이 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이다. 단순히 교회의 상징이 아닌 우리의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구원의 기념비를 붙들고 살아갈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공동체가 함께 세우는 돌

이 기념 돌은 여호수아 혼자서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12지파의 대표가 함께 각자 하나씩 어깨에 메고 나왔다.(4,5) 그러기에 각 지파가 함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르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목회자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함으로 함께 세워가는 하나님의 몸된 공동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개척하고 교회가 세워지면서 헌신한 지체들이 있기에 그 모든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교회를 세운 '기념 돌'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

미래를 향한 소망의 돌

기념비를 세우는 두가지의 목적은 하나는 하나님의 강한 손과 살아계심을 온 세상에 선포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와 다음 세대가 영원토록 하나니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24)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고난을 이길 힘을 주고, 미래를 향한 소망의 근거가 된다. 

창립 9주년을 맞이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고 마음에 새로운 소망의 기념돌을 세우고자 한다. 우리가 세운 기념돌들을 보며 세상이 물을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기적 같은 은혜로 세워졌습니다." 담대하게 간증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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